[FA 그 이후] LG와 5년 재계약을 선택했던 김현중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04-13 18: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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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KBL이 종료되면서 서서히 FA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FA 시장은 5월 1일 시작되지만 벌써부터 KBL판 에어컨 리그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KBL의 과거 FA들은 어땠을까? 바스켓코리아는 매해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를 되짚어보려 한다.


2011년 가장 높은 인상률을 기록한 선수는 김현중이었다. 그의 FA 이전과 이후 활약에 대해 알아봤다(당시 1위는 137.3%를 기록한 정병국이다. 하지만 그는 영구제명 되었기에 제외했다).


[2011년 최대 인상률을 기록한 김현중]
LG 잔류, 5년 계약, 1억 1천만원 → 2억 5천만원(연봉 2억 + 인센티브 5천), 인상률 127.3%


2010~2011 시즌 기록
44경기 평균 19분 52초 출전 5.7점 2.6어시스트 0.9리바운드 0.6스틸 야투율 45.9%


2011~2012 시즌 기록
44경기 평균 22분 18초 출전 6.3점 3.4어시스트 1.0리바운드 0.9스틸 야투율 39.7%


송도고와 동국대를 나온 김현중은 제 2의 김승현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프로에 진출했다. 공교롭게 소속팀도 김승현이 있던 대구 오리온스였다. 이는 오히려 김현중에게는 좋지 않은 결과가 됐다. 확실한 주전이 있는 탓에 백업 가드 역할을 소화하는 것에 그쳤다.


이듬해 LG로 트레이드된 김현중은 한 시즌을 뛴 뒤 군대에 입대했다. 그런데, 2년의 시간 뒤 그가 돌아온 팀은 울산 모비스였다. 당시 모비스는 양동근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김현중을 영입했다.


김현중은 모비스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는 주전 포인트가드 역할을 맡으면서 모비스를 1위로 이끌었다. 시즌 중반 발목 부상으로 인해 다치기 전까지 24경기에서 10.5점 5.4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수술까지 받으며 복귀를 하지 못했다. 때문에 팀의 우승을 코트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최고의 시간을 보낸 김현중은 다음 시즌 다시 LG로 돌아가야 했다. 모비스로 갈 때 임대 형식의 트레이드였기 때문이었다.


LG에 돌아온 뒤 김현중은 다시 활약이 조용해졌다. 이현민과 전형수 등이 있기에 출전 시간을 나눠가져야 했다.


그렇게 LG에서 2년을 뛴 김현중은 생애 첫 FA 자격을 획득했다. 보상 선수도 없고,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는 포인트가드이기에 김현중의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원소속구단 잔류였다. 조건이 매우 좋았다. 1억 4천만원 오른 2억 5천만원에 5년 계약이었다.


김현중은 “여러 고민을 했다. 하지만 LG에 남는 것이 낫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잔류를 결정했다. 재계약에 있어 가장 큰 요인은 팬들이었다. 창원의 팬들이 보내주시는 열정적인 응원 때문에 재계약을 확정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김현중은 FA 대박 이후 주장도 맡고, 주전 가드로 올라서서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중반 이후 다시 부침을 겪었다. 부상도 겹치면서 결국 일찌감치 시즌을 마쳤다.


2012-2013 시즌 김현중은 부산 KT로 트레이드됐다. KT에서 2년을 뛴 김현중은 DB를 거쳐 2016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이후 퀀텀 스킬트레이닝을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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